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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자치 운영 가이드 – 건방진 교사의 CPR, 1편

안녕하세요! 놀이대장입니다. 오늘은 또 평소와는 다른 주제로 글을 써보려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저의 썰을 푸는 내용이 주가 될 듯 합니다.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저는 현재 시골의 작고 아주 아름다운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말썽을 부리는 아이는 있지만 나쁜 아이는 없는 학교, 교사들의 의견에 존중을 표하는 학부모님들, 교사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관리자들까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다른 학교들과는 다르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여러 업무 중 학생자치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학생자치

저는 2021년 12월에 저희 지역의 교육장님과, 모든 초중고 교감선생님들을 모시고 연수를 진행했습니다. 나름의 큰 성과와 변화를 이뤄낸 저희 학교의 학생자치 사례를 바탕으로 논의하고, 토의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건방졌던 교사의 대실패와 고민, 성장을 적어 내려가겠습니다.

1. 나의 첫 학생자치 – 건방진 자만

저는 2013년에 교직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이것저것 관심이 많고, 누구나 그렇듯 나름 열정이 넘치는 상태로 교직 생활을 시작했지요. 전교생 850명 규모의 초임지. 그 때 교사로서 처음 맡게 된 업무가 ‘학생자치’였습니다.

저는 초등학교때부터 학생 자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언제나 학급 회장을 맡았었고, 5학년 때는 전교부회장, 6학년 때는 전교회장도 했습니다. 중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학급 회장을 쭉 했고, 3학년 때는 전교 회장을 했습니다. 이런 생활은 대학 생활까지 이어져 교육대학교에서는 총학생회 대표자로서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름 학생 자치에 대한 가치관도 있다고 판단했고, 그렇기에 처음 맡게 된 학생 자치라는 업무가 정말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나름 잘 해낼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박살이 났지요.


제가 맡은 당시의 학생 자치 업무는 딱 하나였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전교학생회의 진행


정말 이게 다였습니다. 전임자이신 선배님께서는 정년을 앞두고 계셨고, 평안한 업무와 함께 교직생활을 마무리 하고 싶으셨나 봅니다. 정말로 저게 다였습니다.

그럼에도 초짜 교사인 저의 교직생활은 매우매우 바빴습니다. 일상적인 업무를 따라가는 것 만으로도 무척 벅찼거든요. 정신없이 몰아치는 수합물, 아이들 관리, 수업 준비, 성적 처리 등 처음 해보는 것에 적응하는 것 만으로 너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멀티태스킹 능력이 거의 전무한 저는 수업을 하면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10년이 된 지금에야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멀티는 잘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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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정도 적응을 하고 나니, 이제야 저의 업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 다음 해에도 학생 자치를 맡았거든요. 나름의 학생 자치 경험을 살려서 이런 저런 일들을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 학급 회장단, 전교학생회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캠프를 진행
  • 학생회 행사 – 전교생 대상 바자회, 학년별 보드게임 대회, 각종 공모전 등
  • 학생회 주관 벽화 사업

굵직한 것들을 간단히 살펴보자면 위와 같습니다. 주변 선생님들, 그리고 학교의 관리자 분들까지, ‘저의 학생 자치를 지지하고 응원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잘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구요. 그래서 저는 나름 학생 자치 지도의 전문가가 되었다고 매우 크게 착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2020년. 현재 근무 중인 학교로 오게 되었습니다.

2. 예정된 대실패

새로 온 학교는 전교생 40명 정도의 작은 규모입니다. 이전 학교에서 했던 업무가 쭉 학생자치였던터라 새 학교의 상태가 궁금했습니다. 물론 애초에 그 업무밖에 안해봐서 다른걸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지만요. 여튼 새 학교의 학생 자치는 저에겐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전 학교에서 처음 학생 자치를 맡았을 때와 비슷한 상태였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학생회의. 학생대표자가 읽어내려가는, 꽤 오래되어 보이는 코팅이 된 진행 대본. 침묵하는 학생들. 결국 지도교사의 의견 제시와 의결. 저에게는 나름 충격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학생회보다는 교사회가 더 어울리는 이름이랄까요.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들의 말씀에 따르면, 작은 학교의 학생 자치는 더욱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건방지게도, 내가 하면 당연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해가 바뀌고 2021년. 저는 다시 학생자치를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건방진 생각과는 다르게 제가 맡게 된 학생자치 역시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너무 답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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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전 학교에서 했던 것처럼 잘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이전 학교에서도 학생회의에서 절대 다수의 학생들은 별 말이 없었습니다. 다만 참여하는 수가 많다보니, 그 중에 섞여있을 수 밖에 없는 극소수의 우수한 학생들이 성곡적인 학생 자치가 이뤄진 것 처럼 보이게 해주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것을 두고 내가 잘해서 그런 것 마냥 착각하고 자만했던 것입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학생자치를 돌려줄 수 있을까…?

저의 고뇌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학생회가 활성화되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일까? 그리고 그 문제를 알았다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진정으로 교사회가 아닌 학생회로써 운영될 수 있을까?

나는 건방졌던 나와 죽어가는 학생회를 살리기 위해 C.P.R을 실시해야겠다!

3. 실패한 우리 학생회의 운영 실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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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은 크게 세 가지 였습니다. 주인의식 결여, 수동적 운영, 문화의 부재입니다.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학교가 누구의 것인지요. 아이들이 대답합니다.

“교장선생님꺼요!”, “국가꺼요!”, “교육청꺼요!”

애초에 주인 의식이 없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하는 수업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알게 된 문제점은 주인의식이 결여되다 보니 수동적으로 아이들은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저희 아이들에게 학생 자치는 ‘그냥 하는 것’이더군요.

마지막은 문화의 부재였습니다. 교사가 교육을, 직원들이 운영을 맡아야 한다면 학생들은 학교의 문화를 담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주인의식 결여 – 수동적 운영으로 이어진 문제점은 결국 학생들이 주도하는 학교의 문화 자체가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4. 제도적 어려움

학생자치

학생회 운영상에 겪게 된 제도적인 어려움은 위와 같았습니다. 절대적인 시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결정권이 모자랐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에 쫓겨 의견을 긁어 모으기 바빴고,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모자랐습니다.

그러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학교 안에서 자신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했고, 주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대로 살아갔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때 당시의 문서등록대장을 살펴보면, 임원 선거나 자율동아리 등 5개 항목에 대한 운영 계획만 상신되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마저도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교육과정에 연례 행사처럼 치러지는 내용들 뿐이었습니다.

5. 지도원칙 바로 세우기

학생자치
학생자치

저는 제가 가지고 있던 잘못된 지도원칙부터 대폭 수정하기로 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던 주인 의식 함양을 제 1 목표로 삼았습니다. 거기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갖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두 번째 원칙은 지도 교사가 방치와 간섭의 경계선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실패를 경험 삼아 생각해보니, 저는 학생들에게 너무나 높은 기대를 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교사의 개입을 최소화 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세 번째는 지지였습니다. 먼저 동료 교사, 관리자 등 학교 구성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모두 저의 의견에 동참해주셨습니다. 가장 먼저 한 조치는 물리적 시간의 확보였습니다. 기존에 한 달에 한 번, 40분 진행되었던 학생 회의는 매주 한 번, 40분씩 진행하게 했습니다. 기존 시간의 4배입니다. 교과 시간까지 할당하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주신 선생님들의 공이 매우 컸습니다.

학생자치
학생자치

이런 변화를 문서화한 계획서 일부입니다. 2021년에 이어 2022년에도 이런 제도적인 변화는 이어졌습니다. 조금 읽어보시면 하시겠지만, 정해진 규정에 따라 운영되는 회의 방식을 버렸습니다. 자유롭고 편한 분위기에서 다양한 의견이 오갈 수 있도록 해보았습니다.


이렇게 바꿔본 저의 지도원칙은 장님 문고리 잡은 격으로,

정말 다행스럽게도 큰 효과를 보기 시작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제가 취했던 조치들과 그 결과들을 서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2편으로 넘어갑니다!

학생자치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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